한국 언론에 과연 뉴미디어가 있(었)나

News

2023년 03월 13일

디지털 전환 시도, 십수년째 단편적‧단선적 접근 머물러
틱톡 등 플랫폼 활용도 해외 언론사 대비 제한적
한국적 혁신에 서비스 마인드 필수…‘오디언스 우선’ 사고 전제돼야

Share on Twitter Share on Facebook Share on LinkedIn Share by email

디지털과 뉴미디어를 주제로 원고 요청을 받고선 잠시 고민했다. 디지털과 뉴미디어가 새로운 기술 도입인가, 플랫폼 활용인가, 콘텐츠 변화인가, 미디어 문화를 바꾸려는 시도인가. 어디에 방점을 둬야 할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싸잡아 봐도 한국 언론에서 ‘이거다’ 하고 떠오르는 사례나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없었다. 

근래 주목받는 중앙일보의 유료화 (재)시도처럼 개별 언론 단위에서 변화 움직임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이라는 명제에 비춰 보면 여전히 단편적‧단선적으로 이뤄지는 경향이다. 결과적으로 그들만의 실험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뉴스와기술’ 이름을 건 연구소에 몸담으며 겪게 된 난감함도 바로 이 부분이다. 기술 발전의 역동성과 오디언스 적응도에 비해 국내 뉴스 시장의 전환은 너무 느리다. 스터디할 만한 새로운 ‘거리’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한국적 상황과 괴리 있는 해외 선도 언론 동향을 지속적으로 다루는 것이 공허해질 지경이다.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언론계 사정을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백날 ‘디지털 퍼스트’ 외쳐봐야 근본적인 관점 전환 없인 답이 없어서다. 필자가 생각하는 디지털 시대 뉴미디어식 접근은 콘텐츠 생산‧소비 주체의 관계 변화가 핵심이다. 미디어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해 소비하고, 나아가 누구든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열린 환경이 바로 디지털 생태계다.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많은 뉴미디어와 경쟁하는 올드미디어도 오디언스를 우선해야 경쟁력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굳이 뉴미디어 타령하지 않아도 새로운 길을 가게 된다. 최근 해외 언론계를 달군 플랫폼 관련 두 가지 이슈를 살펴보며 이런 생각은 더 견고해졌다. 

먼저 트위터 파동이다. 챗GPT(ChatGPT) 등장 이후 지금은 언론산업도 생성형 AI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지만 최근까지 해외 언론계 핫이슈는 일런 머스크(Elon Musk) 테슬라 CEO의 트위터 인수였다. 주류 언론을 대놓고 불신하는 억만장자 손에 트위터가 들어가면서 언론계 안팎에선 우려와 비판이 쏟아졌다. 일선 기자들의 탈(脫) 트위터 행보도 줄이었다. 

영미권 등 해외 언론계의 트위터 사랑은 (과의존을 걱정할 정도로) 각별하다. 트위터가 저널리스트의 디지털 사무실이자 브랜딩 채널, 취재처이자 놀이터로 자리 잡힌 지 오래다. 언론사 조직 차원에서도 뉴스를 유통, 확산하고 오디언스와 소통하는 핵심 채널이다. 그런 소셜 공간이 경영자 트윗 하나에 휘둘리는 상황이 되니 소란이 일어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소셜미디어 아이콘
오디언스 접점 확보 및 확대를 위해 해외 유력 언론들은 소셜미디어 채널을 전방위 활용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언론이 트위터에 몰입하게 된 시기는 2010년대 초다. 당시 트위터는 정보 유통‧확산의 힘을 개개 사용자에 부여한 혁신적인 뉴미디어였다. ‘아랍의 봄’(중동 전역으로 확산된 반정부 민주화 시위)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린 채널도 다름 아닌 트위터였다. 새로운 디지털 광장의 역동성을 경험한 언론(인)들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트위터는 20여년 간 뉴스룸 바깥의 디지털 공론장으로 기능했다. 

국내에서도 한때 트위터 인기는 대단했다.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언론들도 앞다퉈 계정을 만들었다. 기자들이 트위터상에서 개인 의견을 표출하면서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이 유행처럼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플랫폼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언론(인) 활동도 뜸해졌다. 지금은 뉴스를 게시하고 여론을 모니터링하는 공간 정도로 삼는 분위기다. 

1세대 소셜미디어 등장과 함께 서구권 언론이 오디언스와 마주하고 직접 소통하는 문화를 깊게 뿌리내릴 때 한국 언론은 그러지 못한 것이다. 머스크발 트위터 혼란에도 국내 언론계에선 별다른 동요가 없었던 배경이다.

오디언스를 좇는 국내외 언론의 온도차는 틱톡에서도 보인다. 틱톡은 숏폼(short form)이라는 콘텐츠 포맷을 대중화시키며 디지털 문화의 새 장을 열었다. 크리에이터로서 개개인이 콘텐츠를 만들고 트렌드를 주도하는데, 참여하는 사용자 연령대가 낮은 젊은 플랫폼이기도 하다. 페이스북 모회사인 메타(Meta)가 틱톡 기세에 밀려 운영 노선을 바꿀 정도로 틱톡 성장세는 매섭다. 

덩달아 뉴스 시장에서도 틱톡의 영향력은 급증했다. 로이터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보고서 2022>에 따르면, 18-24세 응답자의 40%가 틱톡을 사용하고 15%는 뉴스를 보기 위해 틱톡을 활용했다.

해외 유력 언론들이 뜨거운 시장을 놓칠 리 없다. 워싱턴포스트는 일찌감치 ‘우리는 신문이다(We are a newspaper)’는 슬로건 아래 틱톡 내 브랜딩에 나섰고, 영국 공영방송 BBC는 지난해부터 소셜 플랫폼 전략에서 틱톡을 우선순위에 배치하고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디지털 혁신 선두주자로 꼽히는 뉴욕타임스도 진출했다. 상대적으로 늦은 올 초 뉴스용 틱톡 계정을 오픈한 뉴욕타임스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저널리즘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실험할 것”을 공언했다. 

공통적으로 잠재 오디언스 발굴이라는 장기 미션을 깔고 가고 있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의 비디오 담당 에디터(Micah Gelman)는 언론 인터뷰에서 “(틱톡을 통해) 새로운 오디언스에 다가가고 있다”면서도 “갑자기 포스트를 구독하고 싶어 하는 10대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구독 준비가 됐을 때 우리와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플랫폼이 아닌 오디언스에 대한 집중이 틱톡 전용 뉴스를 생산하는 동기이자 동력인 셈이다. 

@washingtonpost

The city is a hub for humanitarian aid and military deliveries into the capital and further east. (3/5/2022)

♬ original sound - We are a newspaper.

흥미로운 건 틱톡상에서 뉴스 중요성이 폭발한 결정적 사건 중 하나가 바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사실이다. 아랍의 봄이 20여년 전 신생 미디어였던 트위터 존재감을 각인시켰다면, 20여년 뒤 벌어진 국가 간 전면전이 틱톡 영향력과 플랫폼 확장성을 키웠다. 오디언스 뉴스 수요가 이런 변화를 추동했다. 그 오디언스 시선이 어디에 더 머무는가에 따라 뉴스를 다루는 언론들의 디지털 전략도 빠르게 수정, 보완됐을 것이 자명하다.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국내에 퍼뜨려진 뒤 지금까지 ‘디지털 혁신’은 한국 언론계에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있다. 말은 무성한데 여태 실체를 명확히 본 사람은 없다. 혁신을 찾는 부산함 속에서 오디언스를 우선하는 콘텐츠와 서비스, 비즈니스에 대한 고민은 과연 얼마큼 있었을까. 

일반 기업도 철저히 소비자 필요와 편의, 만족에 집중했을 때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서비스 마인드는 소비자 응대의 기본 중 기본이다. 언론도 다르지 않다. 미디어 기업이 되어 뉴스 소비자의 필요를 찾아내고 그들의 불편을 해소할 방법을 고민하고 까다로운 오디언스를 어떻게 붙잡을지 몰두할 때 디지털과 뉴미디어에 부합하는 한국적 혁신이 비로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