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는 독자가 핵심 경쟁력이다. 독자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 뉴스를 비롯 모든 형식과 내용의 콘텐츠도 독자에겐 하나의 경험 즉, 같은 종류의 상품으로 소비된다. 시장 경쟁에서 언론사가 살아남으려면 이들 독자의 소비 행태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디지털 뉴스 독자는 기본적으로 여느 소비자와 다를 바 없다.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이 얻길 원한다. '숏폼' 영상의 소비 증가는 단적인 지표다. 시간과 관심이라는 한정된 비용을 잘게 쪼개 더 많은 경험을 얻고자 하는 독자의 소비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언론사가 숏폼 영상에 적극 뛰어드는 배경이다. 워싱턴포스트, CBS, NBC, CNN 등 해외 유력 언론사를 중심으로 틱톡,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서 전용 콘텐츠를 앞다퉈 만들면서 독자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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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엔터테인먼트 수요가 강한 소셜 미디어서 뉴스의 매력도는 모호하다. 사회적 이슈를 면밀히 다뤄야 하는 심층 저널리즘은 숏폼의 특성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언론사의 목표는 독자 관심을 유도하고 관계를 형성해 자사 브랜드로 끌어들이는 하나의 통로를 확보하는데 있다.
젊은 독자와 접점 맺는 공간으로 소셜 미디어 활용
180년의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숏폼에 진심이다. 디지털 오리지널 콘텐츠를 편집해 인스타그램, 틱톡 등 운영 중인 여러 소셜 계정에 게시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의 방향 역시 분명하다. 새로운 독자 유입, 특히 젊은 독자층 확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지난 몇 년 동안 사진과 동영상 기반의 소셜 플랫폼이 페이스북보다 더 많은 '오가닉(organic) 트래픽'[1]과 구독을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스타그램은 현재 팔로워 수가 무려 625만 명을 넘었다. 전체 팔로워 가운데 3분의 2는 18~34세 연령대의 젊은 독자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콘텐츠 배포로 브랜드 영향력을 확장했다.
이코노미스트 팔로워 가운데는 여성 비율도 높다. 리브 몰로니(Liv Moloney) 소셜 미디어 총괄 책임자는 “전통적 뉴스나 금융과 같은 주제에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여성 독자들과 접점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딱딱한 주제만 다루는 기존의 매체 이미지를 벗어나 자사의 다양한 콘텐츠 배포에 주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2022년 7월 틱톡에도 뛰어들었다. 몰로니는 틱톡 진출의 이유를 "차별화와 새로운 도전"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인스타그램으로 브랜드 영향력을 넓힌 이코노미스트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이코노미스트 틱톡 계정은 27만 명 가량의 팔로워를 확보했는데 대부분 35세 미만의 젊은 세대다. 또 3,200만 회 이상의 조회수와 160만 개의 좋아요를 받는 등 게시물에 대한 호응도 괜찮은 편이다.
"전통 매체는 새로운 포맷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일반적인 흐름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몰로니는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숏폼 콘텐츠에 대해 “틱톡이 어떤 공간인지 보여주는 좋은 예시"라며, "브랜드에 충실하고 자신이 정말 잘 아는 분야를 다루면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코노미스트의 소셜 미디어 활동은 파죽지세다. 작년 한 해 여러 플랫폼에 걸쳐 1억 3,0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6,100만 명에 달하는 팔로워를 확보했다. 현재 이코노미스트 웹사이트 방문자 가운데 5분의 1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들어온다.
단순 유행 따라잡기로 볼 수 없는 '숏폼 가이드라인'
이코노미스트의 소셜 미디어 성공은 일과적인 이벤트 수준이 아니기에 가능했다. 자사 브랜드 포지셔닝, 독자와 시장, 미디어 지형 변화 등 여러 상황을 분석하여 내린 접근 방식이다. 내부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숏폼 영상 가이드라인만 보더라도 치밀한 방향성을 알 수 있다.
- 어려운 질문에 대한 간단하고 간결한 설명, 영리한 그래픽, 명확한 서술
- 거침없는 위트와 개성
- 지정학(geopolitics), 경제, 금융, 세계 지도자 프로파일, 과학, 기술, 데이터 등 핵심 취재 분야에 충실하면서도 기발한 스토리 제작
- 명확한 콘텐츠 분류(틱톡에서 8개의 재생목록을 두고 목록에 포함되는 콘텐츠만 제작)
모든 가이드라인은 이코노미스트의 경쟁력 확보를 향한다. 첫째, 언론사 강점 부각이다. 숏폼 콘텐츠에 저널리즘이란 전문적 가치를 더하는 관점이다. 둘째, 브랜드 가치 제고다. 민감한 주제도 거침없이 파고드는 위트와 매체 고유의 특성(personality)을 살렸다. 셋째, 콘텐츠 전략이다. 자신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독자의 니즈에 초점을 맞춘다.
소셜미디어와 숏폼 활용은 훌륭한 수단이다. 독자의 콘텐츠 소비 행태 흐름을 읽고 매체 생존에 필수적인 젊은 독자 확보를 목표로 잡았다. 특히 플랫폼에 따른 전달 방식 변화에 힘을 실었다. 스타일과 형식이 관건인 디지털 미디어 지형을 감안했다.
숏폼에서 시청률 2위 기록한 장르는 뉴스 영상
오프컴(Ofcom)의 지난해 그리고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뉴스는 숏폼 영상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2022년에는 인플루언서 제작 콘텐츠보다 앞선 3위를 기록했다. 2023년엔 63%의 시청 응답률로 2위를 차지했다. 부동의 1위를 차지한 ‘어떻게(how-to)’ 영상(64%)과 단 1% 차이다.
효과적인 전달 방식 확보에는 '투자 부담' 불가피
독자 경험을 결정짓는 주요인으로 콘텐츠의 내용, 작성 스타일, 전달 채널 등 세 가지를 꼽는다. 사람의 커뮤니케이션과 마찬가지로 메시지를 어떻게 포장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해 상대방을 설득할 것인가의 문제다.
언론사가 독자를 설득하려면 콘텐츠가 흥미로워야 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경험하고 있듯 이것 만으론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콘텐츠의 품질만큼 효과적인 전달 방식 마련이 중요한 이유다.
현재까지 효과적인 방식으로 평가받는 것이 숏폼이란 포맷과 소셜 플랫폼이다. 다르게 말하면 온라인 공간에서 독자가 이동한 장소다. 물론 이 장소는 언제든지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언론사는 독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찾아가야 한다.
하지만 언론사가 움직이는 만큼 비용이 발생한다. 최근 급부상한 숏폼은 새로운 독자를 찾기에 적합하지만 직접적인 수익을 거두기는 까다롭다. 대부분의 뉴스조직이 소셜 미디어 활용을 주저하거나 반짝 프로젝트로 그치는 배경이다.
영상 길이 줄이기보다 포인트 잡는 편집 원칙 고수
비용 부담을 피하는 현실적인 대책으로 콘텐츠 재활용이 제시된다. 디지털 콘텐츠는 편집이 비교적 자유롭고 포맷만 맞춘다면 여러 경로로 유통이 가능하다. 숏폼도 마찬가지다. 이코노미스트도 자사 콘텐츠를 편집해 숏폼을 만들고 동일 포맷을 게시할 수 있는 여러 플랫폼으로 배포한다.
콘텐츠 재활용은 새로 제작하지 않는 만큼 추가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실제 이코노미스트 소셜미디어팀에 숏폼 영상 전담자는 편집자 1명 뿐이다. 물론 효과적인 전략을 전제할 때 가능하다.
이코노미스트는 오리지널 콘텐츠의 길이를 줄이는 것으로 숏폼 영상을 다루지 않는다. 흥미를 유도하는 포인트를 짚어내 편집한다. 영상 분량은 하나로 통일했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 릴스가 길이 제한을 1분 30초로 변경했을 때 틱톡 영상도 1분 30초로 맞췄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theeconomist Why do you have an accent in a foreign language? Our language columnist, Lane Greene, explains why #language #languagelearning #languages #spanish #english #learnontik #foreignlanguage #accent #italian #cantonese
♬ original sound - The Economist
성과를 내려면 확실한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이코노미스트는 새로운 독자를 자사의 풍부한 콘텐츠로 유도하는 것이 1순위 목표였다. 숏폼과 소셜 미디어의 요약 콘텐츠를 일종의 ‘맛보기’로 활용해 페이월 뒤에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궁금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초기에 틱톡을 시작해 160만 팔로워를 확보한 워싱턴포스트도 비슷하다. '뉴스를 정기적으로 소비하지 않는 독자'들이 타깃이었다. 2년 전 미카 겔만(Micah Gelman) 워싱턴포스트 영상 책임자는 “독특한 방식으로 뉴스를 전달하고 새로운 독자에게 다가갈 기회를 발견했다"며 전담팀 확대를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뉴스조직 구성원이 직접 등장해 '숏폼 맞춤형' 콘텐츠를 서비스한다. 기존 보도 형식을 벗어나 재미있게 연출하는 기법이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볼 수 있다. 딱딱한 전통매체의 이미지를 탈피해 젊은 독자들을 마주하는 방식이다.
'나'의 말에 귀 기울이게 만들 전략은 무엇인가
숏폼 영상을 활용하고 소셜 미디어로 진입하는 언론사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독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는 방향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독자 관계 증진에 있다. 전통적인 매체와 대중의 관계는 몰락하고 디지털 브랜드와 개별 독자의 관계가 미디어 영향력을 증명한다.
독자도 브랜드도 디지털에선 동등한 독립적 존재다. 소셜 플랫폼의 부상도 결국 모두가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생태계에서 출발한다. 즉, 언론사와 독자의 관계 또한 사람 대 사람의 관계라는 관점이 중요하다. 과거 종이신문 시절 일방통행만 하면 되던 언론사의 위상은 이제 설 곳이 없다.
새로운 생태계서는 "독자가 언론사와 동등한 위치에 있다면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그리고 경쟁자가 아닌 나의 말에 귀 기울이게 만들 전략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 그 답은 언론사 브랜드의 매력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신뢰할 수 있고, 설득의 방식이 재미있다면 독자는 더 귀를 기울인다.
소셜 플랫폼에서 잘 나가는 언론사들은 하나같이 고유의 개성이 있다. 이코노미스트 숏폼 가이드라인에 언급된 ‘거침없는 위트와 개성’은 “사람이 아닌 브랜드도 개성을 가질 수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워싱턴포스트 틱톡에 구성원이 등장하는 것도 개성을 심으려는 의도다. 즉, 독자와의 눈높이를 맞추는 방식으로 인간적인 매력을 부여했다.
데이터 기반 콘텐츠·독자·비즈니스 전략 중요
언론사는 독자에게 다가서는 하나의 브랜드이자 IP로 거듭나야 한다. 독자에게 언론사가 아닌 이름으로 기억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어떤 플랫폼에서도 개성 있는 브랜드는 지속가능하다. 디즈니 브랜드가 만화, 영화, 시리즈, 스트리밍까지 변화하는 미디어 지형에도 고유한 가치를 유지하듯 언론사도 가치를 확장할 매력 요소를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 일단 콘텐츠와 독자를 제대로 진단해야 한다. 그동안 생산한 콘텐츠가 어떤 특색을 갖추고 있는지, 시장에서 어느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지, 독자는 어떤 식으로 소비하는지 모두 알아보아야 한다. 데이터 인프라가 중요한 이유다.
최우선 과제는 '로그인 독자' 확보다. 데이터 확보에 필수 요건이다. 물론 로그인한 독자의 데이터는 파편적으로 말한다. 다방면의 분석은 물론이고 데이터 사이 공백들을 설문조사나 인터뷰 등 독자에게 한 발 다가선 방법으로 채워줘야 한다. 온라인 공간의 데이터는 현실의 독자를 온전히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콘텐츠 전략, 비즈니스 전략 나아가 브랜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그렇게 완성된 하나의 ‘언론사’는 미디어 생태계서 새로운 얼굴(IP)로 제대로 경쟁을 시작할 수 있다. 독자는 소비하는 콘텐츠 포맷이나 플랫폼을 언제든지 바꿔 선택하지만 흥미로운, 믿을 수 있는 뉴스 브랜드는 쉽게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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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닉 트래픽(Organic Traffic)은 광고 등 별도 채널을 통해 웹사이트로 유도되는 트래픽을 제외하고 검색 엔진 등을 통해 곧바로 유입된 트래픽을 말한다. 쉽게 설명하면 이용자가 구글, 네이버 등 을 통해 검색한 결과에 노출된 링크를 타고 들어온 경우다. 이용자는 검색 결과 페이지에서 원하는 정보를 가장 잘 찾을 수 있다 생각되는 곳을 선택하기 마련이기에, 웹페이지가 이용자의 니즈를 충족시킨다는 주요 지표로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