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혁신’ 그만 얘기하고 ‘가디언 디테일’ 따라해 보자

News

2023년 07월 10일

유령처럼 떠도는 디지털 혁신, 구호보다 실체 집중해야
페이월 전략 대신 독자적 후원모델 구축
정직투명 편집원칙 콘텐츠로 드러내…서비스 고도화 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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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디지털 혁신하면 으레 손꼽히는 사례가 바로 뉴욕타임스(NYT)다. 9년 전 통렬한 자기비판을 담은 97페이지짜리 ‘혁신보고서(Innovation Report)’로 요란하게 경종을 울린 뒤, 말잔치에 그치지 않고 실제 디지털 조직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NYT의 성공적 디지털 전환 과정은 경영지표로 고스란히 확인된다. 2022년 말 기준 NYT 유료 구독자 수는 약 955만명인데, 디지털 전용(digital-only)이 883만여명으로 인쇄신문 73만명보다 10배 이상 많다. 매출도 디지털 9억7850만 달러, 인쇄 5억7370만 달러로 크게 차이 난다.

혁신보고서가 알려진 2014년 NYT 전체 구독 매출(8억3650만 달러) 중 디지털 수익(전용 패키지+e리더+지면 디지털판)이 1억6930만 달러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변 수준이다. 심지어 당시 실적 보고에는 디지털 관련 구독자수나 매출을 별도 분류해 표기하지 않았을 정도로 ‘NYT=종이신문’ 자체였다.

그랬던 전통 신문사가 10년이 채 안 돼 명실상부 디지털 중심 미디어 기업으로 변모했으니, 언론계 혁신의 롤모델로 마르고 닳도록 거론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팬데믹과 글로벌 경기 침체기를 지나며 강력한 경쟁 매체들조차 주춤거리는 상황에서 NYT만큼은 흔들림 없이 성장곡선을 그렸다. “NYT 경쟁자는 이제 NYT 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며 ‘NYT=디지털 혁신’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넘사벽’ NYT 못지않게 조명받아야 할 매체가 있다. 한국 언론사는 아니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이다.

물론 가디언은 일찍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언론사다. 저널리즘 가치나 콘텐츠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고 독자적 후원모델을 구축하며 디지털 역사를 새로 써왔다. 모든 언론이 NYT처럼 되길 바라며 페이월(paywall, 온라인 유료화)을 모색할 때, 저널리즘의 공적 가치를 앞세워 페이월 없이 150만명의 후원자로 지속가능의 큰 축을 세우며 정평이 났다.

가디언에 다시 한번 경탄하게 된 일은 두 달 전 게시된 기사에서였다. 엄청난 특종 보도도 아니다. ‘페이크(fake) 가디언 기사’가 만들어진 사정을 설명하는 공지성 콘텐츠다. 4월 6일자(영국시간) 가디언 오피니언란에 실린 편집 혁신 책임자(head of editorial innovation) 명의 글은 “챗GPT가 페이크 가디언 기사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응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내용은 이렇다. 기자가 한 외부 연구원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연구 수행 중 수년 전 가디언이 다룬 기사를 참고하는데 가디언 웹사이트와 검색 결과에서 찾을 수 없다는 문의였다. 그는 가디언의 콘텐츠 관리 시스템 검토를 요청했는데, 확인해 본 결과 챗GPT가 만들어낸 ‘페이크 기사’로 인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가디언은 생성형 AI의 파괴적 잠재력 못지않게 위험성이 크다는 점을 인지했다. 기술의 부작용을 경계하면서 책임 있는 보도에 어떻게 쓸 수 있을지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언론사들이 생성AI 활용 방법과 가이드라인을 앞다퉈 발표하던 시기에 가디언이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그러면서 책임자는 “앞으로 몇 주 안에 생성AI 사용 계획에 대한 명확하고 간결한 설명을 게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별하진 않은 글이다. 하지만 유달리 눈에 띈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①일선 기자가 외부 독자가 보낸 메일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음 ②한 건의 기사 오류 의심에 뉴스룸 시스템을 점검 ③내부적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을 편집 책임자가 나서서 설명 ④이를 통해 생성AI라는 뜨거운 이슈와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킴 ⑤그러면서도 시류에 편승하기보다 자신들의 저널리즘 원칙과 연결 ⑥일련의 과정을 핵심 이해관계자인 독자와 콘텐츠로 공유 ⑦그것도 지나칠 정도로 세세하게 ⑧약속대로 생성AI 접근에 관한 원칙 발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가디언의 정직하고 투명한 접근은 편집과 광고는 물론 경영적 판단에서도 두드러진다. 몇몇 ‘가디언 뉴스’를 읽어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 뉴스룸 밖에서 저널리스트가 전문 용어 사용하는 것의 위험성 : 정정 기사를 작성하고 독자와 직접 소통할 때 일반적으로 업계 전문 용어 지양하고 정확한 표현 지향하는 편집 방침. 기사 페이지 구성 중에서 기자가 어디에서 보도했는지를 알려주는 날짜 표시, 기사에서 발췌해 레이아웃에 눈에 띄게 표시하는 인용문 사용, 긴 기사 구분하기 위해 단락 사이에 짧은 제목 붙이는 중제 등도 설명.
  • 가디언이 도박 광고를 거부하기로 결정한 이유 : ‘중독과 재정적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도박(gambling) 광고 거부 방침. 스포츠 베팅, 온라인 카지노, 스크래치 카드 프로모션 포함한 모든 형태의 도박 광고 배제. 참고로 영국은 선거,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도박산업이 크게 활성화돼 있지만 최근 정부 주도 하에 규제 움직임.
  • 지속가능성을 위한 미디어 역할 보여주는 가디언의 사례 : 종이신문을 비롯한 제품 포장에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로 대체. 뉴스 생산 및 유통 과정에서도 탄소배출 저감 노력. 또 환경에 부정적 영향 주는 화석연료 회사 광고 중단. 저널리즘 용어도 재정비. 보도에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같은 말 쓰지 않고 ‘기후비상(climate emergency)’ ‘기후위기(climate crisis)’ 등 현주소를 크게 체감할 수 있는 표현으로 바꿔 사용. 이같은 활동으로 미디어업계 최초 비콥 인증(B Corporate Certification) 받음.

‘가디언다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디지털 서비스 고도화 노력도 열성적이다. 일례로 기사 페이지를 분류하고 광고주-독자 모두에게 적합한 프리미엄 광고를 집행하기 위해 기술회사와 협업하는가 하면, 뉴스앱 수익모델 발전을 위해 이용자 행동 데이터 기반 후원 메시지를 다변화했다. 독자와의 개인화된 신뢰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프리미엄 가디언’을 경험케 하려는 의도다.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의 시작과 끝에는 “독립 저널리즘에 힘을 실어달라”는 후원 메시지가 자리한다.

2021년 가디언은 전년 대비 13% 성장한 2억5580만 파운드(약 4000억원) 매출을 기록하며 무려 13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구조조정 효과도 작용했지만 디지털 구독 및 후원 증가, 광고 매출 증대가 호실적을 이끈 것으로 분석됐다. 대형 광고(주)를 배제했음에도, 무료뉴스를 고수했음에도 일궈낸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사실 가디언 행보는 큰돈이 드는 시스템 투자, 기술적 접근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내 언론사들도 충분히 따라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손해를 감수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경영적 결단, 전사 차원에서 수고로움에 기꺼이 동참하는 일사불란함, 독자와 부지런히 소통하려는 의지 등이 없기에 ‘감히’ 실행하기 힘들다. 한 마디로 절박하지 않으니 변화도 지지부진하다.

국내 언론사는 지금까지 디지털 전환‧혁신‧생존 운운하면서도 해외 사례를 공부만 한다. 그리고 혁신하기 힘든 이유를 ‘공짜뉴스’에 젖어든 포털 중심 미디어 환경에서 찾으며 자조한다. 이런 답 없는 상황이 벌써 십여년이다. 아이러니한 건 아무리 어렵다 어렵다 해도 한국 대형 언론사 중에서 가디언처럼 적자경영에 시달리는 일이 없다. ‘대마불사’ 인식이 팽배하다보니 고만고만한 혁신조차 잦아들었다.

혁신은 거창한 수사나 막대한 비용에 막히면 안 된다. 기본에만 충실해도 무언가 이뤄진다는 것을 가디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독자(오디언스)에 대한 관심과 이해, 독자와의 새로운 관계를 인정하는 낮은 자세, 독자의 질문과 요구에 성심성의껏 응하려는 노력, 독자를 향해 저널리즘 가치를 설득하는 지속적인 소통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디테일을 어떻게 살리느냐가 한국 언론의 진짜 혁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