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PR이 필요 없다? 착각이다
NYT 상징적 장소서 경험 마케팅…브랜드 캠페인 일환
‘읽는 신문→이용 플랫폼’ ‘독자→콘텐츠 이용자’ 변화, 대소비자 관계전략 살펴야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입체적인 오프라인 경험 마케팅을 선보였다. 공간은 지하철 역사, 소재는 자사 상품.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그랜드 센트럴역까지 운행하는 셔틀 노선 차량 안팎에 NYT 대표 콘텐츠를 채웠다.
역 사이를 이동하는 90초 동안 승객들은 NYT 제품군을 보고 만지고 체험한다. 각 칸의 콘셉트별로 뉴스, 게임, 요리, 오디오, 와이어커터(Wirecutter, 제품리뷰 사이트), 디애슬레틱(The Athletic, 스포츠 전문매체) 등의 핵심 콘텐츠를 팝업 이벤트와 함께 접하는 형태다. 올해 전개하는 NYT 캠페인 ‘올인(All In)’의 일환이다.
NYT는 세련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마케팅하는 언론사 가운데 하나다. 2017년 ‘진실(Truth)’을 테마로 10여년 만에 브랜드 캠페인을 펼쳐 업계에 화제가 된 바 있다. 콘텐츠 변화와 조직의 변신을 캠페인 스토리로 풀어내면서도 저널리즘의 핵심 가치를 녹여냈다.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며 자신의 브랜드 존재감을 ‘혁신’의 이름으로 제대로 알린 것이다. NYT는 이후로도 ‘독립성(Independent)’ ‘구독(Subscription)’ 등 경영전략과 궤를 같이 하는 메시지의 브랜드 홍보를 꾸준히 해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마케팅은 전환기 미디어 기업의 새로운 정체성을 잘 드러냈다. ‘뉴스’라는 단일 상품을 취급하는 전통적 신문사를 넘어, 뉴스 이상의 상품을 아우르는 구독 플랫폼으로 진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NYT의 디지털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번들(bundle, 묶음) 전략을 캠페인 화두로 처음 꺼내 들었다.
NYT 마케팅 책임자는 “우리의 모든 상품을 전시함으로써 구독자(subscribers), 독자(readers), 가정 요리사(home cooks), 문제 해결사(solvers), 스포츠 애호가(sports fanatics)들에 더 다가서고 출퇴근길과 일상 생활에서 NYT를 사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데 캠페인 목표가 있다”고 설명했다.
NYT가 시도하는 일련의 활동은 일회성 퍼포먼스라기보다 독자 관계 관리‧강화 측면에서 살펴야 한다. 지금은 언론도 일반 기업처럼 고객, 즉 독자(오디언스) 관계를 개선하는 노력과 나름의 전략이 필요하다.
읽는 종이신문에서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 된 현재를 다양한 ‘콘텐츠 이용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개별 콘텐츠뿐 아니라 미디어 브랜드로서 차별적으로 인지될 때 잠재 독자의 관심도 끌 수 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그 상품의 효용성을 소비자 관점에서 설득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함께 보면 좋은 내용
‧구독자 이탈률 낮추기의 조건
‧조직 문화 개선해야 뉴스 제품 완성된다
‧언론틀 넘어서는 신문사 전략‧전술
독자 관계 관리는 상당한 예산을 직접 투입하는 화려한(?) 마케팅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상품과 서비스를 포함한 언론사 경영의 전반을 제대로 알리는 PR 활동이 기본 바탕이어야 한다. 뉴스 기업이라면 조직 내부의 다양한 소식도 뉴스로 다루며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NYT는 온라인상에 프레스(press) 공간을 두고 각종 소식을 공유한다. 뉴스, 특집, 의견 등 보도물과 관련한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타임스 인사이더(times-insider)’ 코너에서 상세히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콘텐츠는 일반 기사와 함께 NYT 웹사이트에 그대로 아카이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해외의 주요 언론사도 비슷한 활동을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PR 블로그를 통해 미디어 기업의 정책 및 구성원 변화, 크고 작은 이벤트 등을 두루 소개한다. 가디언의 블로그 ‘인사이드가디언(insideguardian)’, 독일 일간지 타츠(taz)의 프레스 코너도 마찬가지다. 타츠는 자사 보도자료를 게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메일링 서비스 신청까지 받는다.
반면 한국 언론은 독자 대상 커뮤니케이션에 대단히 인색하다. 매체 스스로 내부의 이야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언론사가 운영하는 어떤 채널에도 자사 소식은 쏙 빠져 있다. 여러 신문사에서 볼 수 있는 ‘알립니다’ 코너는 수익성 행사를 공지하거나 신규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용도로만 운영될 뿐이다.
이러는 사이 독자가 알아야 할만한 언론계 정보는 단톡방 등에서 수군거리면서 지라시 형태로 지나간다. 방문자도, 구독자 수도 제대로 공개되는 적이 없다. 경영 상황도 마찬가지다. 폐쇄적이고 은밀하기까지 한 한국의 언론 문화는 뉴스 소비자의 무관심과 불신을 키우는 원인이 된다.
일각에서는 저널리즘 정신과 PR의 개념이 상충된다는 주장을 편다. 독자(공중)관계 증진이라는 퍼블릭 릴레이션스(Public Relations)의 본래 목적보다 실체를 부풀려 과장되게 홍보하는 업계의 관행 탓이다. 그런데 PR, 마케팅은 본질적으로 상품 경쟁력이 상향평준화되는 시장에서 소비자와 밀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의 전략적 활동이다.
한국 언론은 미디어 생태계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객관화하고 자기 브랜드에 정직해야 한다. 언론사가 수행하는 활동들을 그대로 알리는 투명한 행보부터 시작해야 한다. 비슷비슷한 콘텐츠를 앞다퉈 쏟아내는 하향평준화된 시장에서 소비자와 더욱 분리되고 있는 언론의 실상을 감안하면 결코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이 아니다.
언론 자신의 모습, 상황, 진로를 전하는 PR의 기본 활동이 진짜 브랜드 경쟁력을 만드는 지름길일 수 있다.
- 이 글은 미디어 전문지 <미디어오늘> 9월 2일자 오피니언란에 [디지털 혁신 점검] 칼럼으로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