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결제 시스템 주목받는 까닭
저널리즘 가치 낮추는 페이월에 부정적 시선 커져
독자가 원하는 방식의 이용환경, 지불방식 설계해야
매체 브랜드 고유의 독자 확보, 분석에 주력할 때다
올해 3월 창간 100년을 맞이한 미국 유력 주간지 타임(Time)은 10년 넘는 여정 끝에 2023년 6월 1일, 디지털 페이월을 완전히 제거한다고 밝혔다. 이유는 간단하다. 더 많은 더 넓은 독자 접점과 이에 따른 수익 창출을 위해서다. 타임의 CEO 제시카 시블리(Jessica Sibley)는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결정이 편집(editorial)과 비즈니스 모두를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저널리즘 관점에서 “젊은 독자층을 포함해 더 많고 넓은 범위의 독자들에게 브랜드를 노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디지털 페이월 뒤에 숨겨졌던 기존 콘텐츠들을 모두 무료로 공개하고 기후변화, 지속가능성, 헬스케어, 그리고 정치 등 몇 가지 핵심 주제를 집중 육성한다. 비즈니스는 광고와 새로운 사업 모델 발굴에 방점을 찍는다.
페이월은 브랜드 가치 인정하는 독자에게만 유효
구독모델은 기업에겐 안정적인 수익을, 소비자에겐 편의를 주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구독 피로도, 경기침체로 인한 구독비용 감소가 이어지면서 구독모델 재고 흐름도 고개를 들고 있다.
디지털 전환 초창기 ‘온라인 공간에서 무료로 무한히 접할 수 있던 콘텐츠’는 독자들에게 뉴스 콘텐츠 소비 습관과 욕구를 키웠다. 사실 일반적인 뉴스 콘텐츠는 미디어 구독 시장에서 경쟁력이 낮고 상대적으로 구독 의지를 보이는 독자들도 적다.
모두가 구독경제에 쏠려 있는 시기에 누구보다 페이월을 선도적으로 도입했던 타임의 결정은 일견 엉뚱한 움직임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이들의 선택은 누구보다 분석에 근거한다. 페이월은 언론사 브랜드 가치를 인정하고 따르는 독자에겐 효과적이지만 독자 유입이 아니라 잠재 독자층 이탈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대다수는 맞닥뜨린 '벽'을 피해 가거나 대체재를 찾는다.
고품질 뉴스는 갇히고 허위정보 무료뉴스는 봇물
페이월은 두 가지 논쟁점이 있다. 먼저 저널리즘의 가치를 억제하는가이다. 페이월은 정보격차를 유발한다. 일부 대형 일간지에서 성공모델로 알려지는 바람에 너도나도 디지털 페이월을 도입하는 언론사들이 쏟아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읽을만한 콘텐츠 즉, 고품질 정보들에 대한 접근성을 낮췄다. 디지털 광고 시장의 침체와 점유율 하락에 유료화 대응이 나왔지만 전체적으로는 산업의 위상을 줄어들게 한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보 격차가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의 그 유명한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Democracy Dies in Darkness)’는 슬로건의 역설이다. 유료 결제를 하지 않으면 어떤 뉴스도 볼 수 없는 페이월은 대다수 독자를 이슈에서 멀어지게 한다.
심각한 것은 유료 뉴스보다 무료로 제공되는 대체재들이 많은데 이들 뉴스가 단순히 저품질의 정보뿐만이 아니라 허위정보를 확산시킨다는 점이다. 심지어 일부 정파의 값싼 선전도구가 되고 있다.
"읽고 싶은 기사가 페이월에 막히면 떠난다"
수익 창출도 국가간 매체간 편차가 있다. 페이월은 일부 대형 언론사의 성공 신화엔 일조하고 있지만 나머지 언론사들에겐 아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 시민들 가운데 64%는 구독하고 있는 디지털 뉴스나 매거진이 없었다. 50%는 지난 12개월 사이에 구독을 취소했다. 응답자 가운데 78%는 읽고 싶은 기사를 페이월에 가로막혀 읽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자의 선택지는 암담했다. 응답자의 41%는 기사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떠났고, 35%는 무료로 읽을 수 있는 유사한 정보 출처를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잠재 독자 이탈의 우려를 현실화 한다. 광고 등 구독 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페이월 바깥의 대다수 독자도 떠날 수 있다. 물론 다른 조사에선 구독과 페이월에 대한 긍정적인 분석도 있지만 애초부터 구독습관이 형성된 시장 배경에 기인하는 등 특별한 경우에 한한다.
읽기 경험 훼손않는 소액결제 적극 검토할 때
독자들이 뉴스 콘텐츠에 대한 가치를 모르는 건 아니다. 독자들은 원하는 콘텐츠 가치에 부합하는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돼 있다. 단적으로 영상 스트리밍 시장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국내 뉴스 독자들의 지불의사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젊은 독자층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주목할 만 하다. 다만, 현재 언론사들이 제시하고 있는 모델들은 독자가 원하는 뉴스 콘텐츠 소비 방식과 다를 수 있다.
예를 들면, 모든 뉴스 콘텐츠가 페이월을 넘어야 읽을 수 있는 경우 거부감이 클 수 있다. 자신이 읽고 싶은 콘텐츠 하나를 위해 구독료를 지불하는 건 다른 수많은 콘텐츠 접근이 가능해지더라도 불필요한 비용이다. 실제로 영국 시민들 가운데 31%는 구독료가 너무 비싸거나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응답했다. 또 응답자의 1/3 이상(39%)은 개별 기사에 대한 지불 옵션이 있다면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언론사의 향후 뉴스 유료화 풀이법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즉, 무료 기사와 함께 딸려오는 수많은 광고도, 모든 콘텐츠에 대한 페이월도 답이 아닐 수 있다. 독자의 관점에서 페이월의 재구축이 중요한 이유다. 개별 기사에 지불하는 마이크로페이먼트(micropayment, 소액결제) 모델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소액결제는 과거에도 아이디어로, 실제 적용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더 세련되게 응용할 수 있다. 독자들이 읽기 경험을 방해 받지 않는 방식으로 단절없이(seamless) 구현할 수 있다. 고품질의 기사들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도입한다면, 또 가치에 맞는 요금을 설계한다면 지불의사를 확보하는 것은 쉽게 풀릴 수 있다.
엄격한 페이월보다 가입독자 만드는 유연성이 더 중요
타임의 페이월 종료는 이미 낯선 일은 아니다. 미국의 최대 지역 언론사 개닛(Gannett)은 광고 수익 증대를 위해 페이월 너머의 기사 수를 줄여나가고 있다. 또, 쿼츠(Quartz)는 작년에 페이월을 내렸고 스포티파이는 팟캐스트들에 걸린 페이월들을 하나씩 걷어내고 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도 더 싼 광고 기반의 구독 옵션들을 제안하고 있다.
페이월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구독모델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관건은 디지털 비즈니스의 기회를 잡기 위해 익명의 독자들을 실체가 있는 독자로 만드는 일이다. 가입한 독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다양한 검증을 통해 독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방식으로 지불할 수 있는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글로브앤메일(Globe and Mail)의 독자 맞춤 능동형 페이월도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다.
독자 지불방식엔 데이터, 시간, 그리고 돈이 모두 포함된다. 예를 들어 개별 기사에 대한 비용 대신 사전 광고 시청, 적은 비용으로 일정 기간 기사에 대한 접근권 구매 등 독자들이 원하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적합한 지불방식 탐색과 구현의 문제도 가입 독자들만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다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독자에게 무료 기사들을 전략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를 이용 데이터로 회수하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독자들은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뉴스룸은 독자 유지와 이용 행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향후 고품질의 콘텐츠 소비에 대가가 필요하다면 원하는 방식으로 지불할 배경이 된다. 독자에게서 얻은 데이터로 분석 및 계획한 방식이기에 작동할 확률도 높다.
뉴스조직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독자의 경험에서 시작돼
최근 네이버 아웃링크 정책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원하던 아웃링크에 몇 가지 제약 조건이 달리면서 언론사들의 부정적인 시각이 계속되자 무기한 보류됐다. 독자 관점은 사라지고 언론사와 유통업자 중심의 공방이다.
국내 뉴스 이용자의 소비습관을 단기간에 바꿀 수 없겠지만 언론사 고유의 독자 관점 전략이 절실하다. 언론사의 디지털 비즈니스가 성공하려면 독자가 원하는 경험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까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변화가 없다면 지속가능성은 불가능하다.
네이버가 마련한 언론사 구독판 등에서 나타난 결과는 언론사 브랜드 경쟁력의 현실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익명에 가깝고 이들을 어떻게 매체별 고유한 가입자로 실체화 할 수 있을지 후속 작업은 없었다.
언론사 플랫폼도, 포털 생태계도 독자 관점의 분석과 서비스 재설계로 이어져야 한다. 언론사 브랜드마다 독자의 특성, 고유의 강점이 다르다고 할 때에는 그 전략도 달라야 한다. 네이버 생태계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의 독자를 유치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뉴스 유료화도 그 독자와 동떨어지면 확장성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