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챗GPT 어떻게 할 것인가
생성형 AI 모델, 인터넷 정보 생태계를 발칵 뒤집어
언론사의 챗GPT 오·남용, 저널리즘 신뢰 약화시킬 수도
콘텐츠 검증에 보다 많은 시간 할애해야
불과 몇 주 사이에 인터넷 정보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는 생성형 AI(Generative AI) ‘챗GPT(ChatGPT)’에 찬사와 우려가 동시에 쏟아졌다. 챗GPT는 사용자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질문에 답하도록 설계된 언어모델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내로라하는 테크기업과 투자자들이 2015년 설립한 오픈AI(OpenAI)가 개발했다.
기존 AI가 데이터와 패턴을 학습한 결과물을 기계적으로 내놓는 정도였다면, 챗GPT는 마치 사람이 창작한 것처럼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한다. 긴 텍스트, 음성 녹음, 이미지, 프로그램 코드 및 구조화된 데이터 같은 콘텐츠를 접목할 수 있다. 복잡한 질문에 대한 답변, 감정 분석, 동영상 콘텐츠도 완성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말 출시된 후 사용자 100만 명을 며칠 만에 모으더니 최근 월 사용자 1억 명을 넘어섰다. 실제 사용 후기들이 소셜미디어에 범람하며 삽시간에 입소문이 퍼졌다. 생성 AI는 지금까지도 많은 것을 이뤄냈지만 잠재력 또한 무한대로 평가받는다. 이미 문학작품, 학위 논문의 저자로까지 챗GPT가 오르내리는 상황이다. 인간과 챗GPT의 경쟁이 현실이 된 것이다.
주요 언론사, 보도 역량 강화에 AI 동원
그간 테크(IT) 및 디지털 네이티브 기업은 개인화 서비스를 중심으로 AI를 주도해 왔다. 사용자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기호와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배치하거나 뉴스레터와 푸시 알림(Push Notification)을 선보였다. 유튜브·넷플릭스는 추천 알고리즘으로 성공한 기업으로 꼽힌다.
제조, 의료 및 제약과 같은 전통적인 산업도 AI 솔루션에서 미래 경쟁력을 다잡은 지 오래다. 고객 수요를 예측하고 고객이 주문하기 전 배송을 사전에 준비하는 물류 인프라, 의료 현장에서 정확한 진단을 보조하는 동영상·이미지 판독 시스템, 법률 문서나 학위 논문 등 방대한 데이터에서의 유사도 분석 같은 것들이다.
언론사들의 AI 도전도 현재진행형이다. 2013년 미국 AP통신은 데이터를 수집해 내러티브 스토리를 자동으로 생산하는 스타트업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Automated Insights)와 협업에 나섰다. 이후 정해진 양식의 기사에서 숫자나 문장의 일부 내용을 바꾸는 정도였지만 스포츠 경기 결과를 비롯해 기업 실적 보고서 작성을 시작했다.
국내 언론사도 2016년부터 경쟁적으로 로봇기자를 도입해 주식시장 속보, 부동산 실거래가 정보, 기상 뉴스 등을 선보였다. 국내 디지털 뉴스 시장을 지배하는 포털사이트 카카오(다음)·네이버는 각각 루빅스(2015년)·에어스(2017년) 등 뉴스 추천 및 편집에 AI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콘텐츠 추천, 정보 추출 및 요약, 뉴스 소스 수집과 배포 등 전 세계 뉴스 미디어 기업에서 AI를 본격적으로 다룬 시기는 2010년대 중반 무렵이다. 2017년 8월 이후 지난해까지 세계 주요 언론사의 AI 프로젝트를 분류한 런던스쿨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자료에 따르면 탐사보도, 독자 댓글, 팩트 체킹 등 언론사 내부의 모든 이슈에 AI가 스며들었다.
미국 나이트 재단이 지난해 5월까지 세계 주요 언론사 130개의 AI 프로젝트를 유형별로 집계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소셜미디어에서 이슈를 파악하고, 공공기관에서 코로나19 데이터를 수집하는 등 ‘보도 역량 강화’에 AI를 동원했다. 업무 프로세스 자동화 도구 등 ‘비용 절감’과 페이월 및 아카이빙 등 ‘수익 최적화’로 그 쓰임새를 넓혔다.
AI 혜택에 주목하는 사이에 테크 전문매체 씨넷(CNET)의 AI 작성 기사로 언론계가 발칵 뒤집혔다. 씨넷이 AI 활용 사실을 밝히지 않아 해당 기사를 읽는 독자는 자동화 기술로 생성된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AI가 작성한 모기지 금리 기사는 인간 기자의 바이라인이 달렸지만 인간 기자가 작성한 기사 모음 페이지에는 해당 기사가 빠져 있었다.
또 독자의 질문에 답변 의무를 지거나 기사 내용에 책임지는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지적이 나왔다. 특히 씨넷의 AI 생성 기사는 챗GPT 결과물과 비슷하게 사람이 쓴 것 같았다. 기자라는 전문직의 붕괴라는 씁쓸한 결말이 아른거린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금명간 AI가 인간 기자를 대체할지 모른다는 비관론에 또 힘이 실린 것이다.
씨넷의 내부 구성원은 상업적 문제도 제기했다. 구글 검색엔진의 알고리즘에 최적화(SEO)한 AI 기사는 모기업의 수익 창출을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기사 내용이 부정확하다는 것 외에도 진실과 투명성 등 저널리즘 윤리를 어겼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씨넷은 AI 기사 작성과 게시를 중단했다.
‘콘텐츠 맞춤화·전문화 기여’ 긍정적 측면도
반면 생성형 AI 기사 작성을 처음부터 공개한 미디어 기업도 나왔다. 건강 잡지 ‘맨스저널’을 소유한 아레나그룹은 챗GPT 개발업체인 오픈AI의 기술로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달리기 기록을 단축하는 효과적인 팁’ ‘40세 이상 남성이 근육을 유지하는 법’ 등의 기사는 AI가 과거 기사 데이터베이스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도출해 만들었다.
이 기사는 기사 상단에 “오픈AI의 초대형 언어모델과 결합된 딥러닝 도구를 사용했다”고 밝혔고, ‘맨스 피트니스 편집자(Men’s Fitness Editors)’라는 바이라인을 표기했다. 다만 아레나그룹은 “AI가 기자들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고 콘텐츠 생산 단계 개선, 비디오 제작이나 후원 콘텐츠, 마케팅 캠페인 등에 활용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의 조나 페레티 버즈피드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자사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맞춤형 콘텐츠와 퀴즈 제작 등에 챗GPT를 활용할 것이다”라는 구상을 전했다. AI 기반 큐레이션(피드)을 넘어 AI 기반 생성(콘텐츠)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으로 읽힌다.
저널리즘, 콘텐츠, 미디어 생태계 전반에 생성형 AI의 파괴력이 예상보다 클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상태다. 긍정적으로 보면 콘텐츠의 맞춤화와 전문화에 기여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AI 시스템에 제공되는 데이터의 규모와 품질을 잘 챙겨야 한다. 이 시스템은 정확한 입력 없이는 최상의 출력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발자 확보, 스타트업 연계도 과제다.
그러나 AI 환경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감안하면 언론사 간 ‘AI 양극화’가 예상된다. ‘딥페이크(deepfake)’처럼 생성형 AI가 만드는 텍스트·이미지·비디오는 거짓이거나 오해의 소지를 유발할 수 있다. 또 원본 또는 저작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관련법 정비가 필요한 대목이다. 부작용과 한계를 감안하면 생성형 AI 콘텐츠는 미완이라고 봐도 어색하지 않다.
언론사와 언론단체는 AI 활용 가이드라인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또 뉴스 조직 내부에 책임을 부여한 AI팀을 구성하고 콘텐츠 검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관행과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언론사의 챗GPT 오·남용은 정보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사람들을 공적 담론에서 점점 더 동질적인 커뮤니티로 밀어내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사 안에서 AI 행위를 설계하는 의사결정의 편향성, 폐쇄성이 두려운 이유다.
- 이 글은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제1739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