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모델 넘어 사업 다각화 필요
이용자, 디지털 뉴스에 유료 결제 중단할 수 있다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 비즈니스에 보유 자산 활용
다른 언론사 따라하기보다 차별화 포인트 찾아야
“좋아요와 구독 눌러주세요!!~” 유튜브 영상을 시청한다면 익숙한 메시지다. 이용자의 관심이 곧 돈이 되는 온라인 공간에서 구독은 유용한 지표이자 도구다. 구독자는 비단 유튜브 채널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현재 모든 미디어 산업에서 구독 비즈니스는 핵심적인 과제로 자리잡고 있다.
콘텐츠를 제품으로 구현하는 언론사들이라면 '구독경제'는 한낱 유행어는 아니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스포티파이 등도 모두 구독모델을 근간으로 성공 가도를 열었다. 빅테크 플랫폼에 디지털 광고 시장을 빼앗긴 상태에서 레거시 미디어의 디지털 구독모델은 생존과도 직결된다.
뉴욕타임스는 2011년 첫 페이월 도입 이래 디지털 구독자 수가 꾸준히 증가해 매출 비중서도 절반을 상회하고 있다. 구독 번들(bundle) 전략은 광고 시장의 침체를 비껴 서며 수익을 견인했다. 하지만 구독모델은 일부 언론사에게만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그 원인은 여러가지를 들 수 있지만 결국 구독시장의 특성과 규모에서 좌우된다.
일부 대형 언론사가 구독시장 절반 이상 독식
우선 구독시장은 승자가 대부분을 가져가는 독과점과 유사한 형태를 띈다. 현재 디지털 구독의 상당량은 일부 대형 언론사들의 독차지나 다름없다. 일부 국가에선 디지털 구독 총량의 절반이 넘는 비중을 차지할 정도이다. 프레스가젯의 조사에 따르면 영어권에서 1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매체사는 36개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뉴욕타임스가 883만 명(작년 12월 기준)으로 구독자 보유 2위인 월스트리트저널과 큰 격차가 난다. 10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언론사도 불과 10개사 남짓이다.
물론 100만 명의 뉴스 구독자 수는 작은 규모는 아니다. 그러나 스트리밍 시장과 비교하면 차이가 매우 크다. 미국 시장에서 영상 스트리밍을 구독하는 소비자는 83%에 달하는 반면, 디지털 뉴스 콘텐츠는 27% 정도다. 영국은 TV-영화, 음악, 스포츠에 비해 뉴스 콘텐츠에 대한 구독자 전환은 7%에 불과하다. 한국시장도 비슷하다.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2에 따르면 국내의 뉴스 유료화 이용자 비율은 14%에 그쳤다. 기사 단건 결제에 후원까지 합친 수치다. 뉴스가 그만큼 콘텐츠 경쟁력이 없다는 반증이다.
현격한 시장 규모의 차이에도 긍정적 시선은 여전하다. 잠재시장이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현재 뉴스 구독자수는 대체로 증가하고 있고 비구독자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치면 적잖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 덕분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다. 이용자의 디지털 뉴스 콘텐츠 관심 자체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 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미디어 이용자의 하루 평균 이용시간은 494분, 8시간이 넘는다. 여기서 뉴스 콘텐츠 이용시간은 단 4분이다. 반면 영상은 평균 149분으로 2시간을 초과한다.
경기 침체, 구독 피로도 쌓이면서 뉴스 유료화 막막
레거시 미디어의 본격적인 디지털 뉴스 유료화 역사는 15년 정도다. OTT 플랫폼은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구독 피로도가 덮치고 있다. 경기 침체와 맞물려 이용자의 구독 비용 절감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용자는 구독경제 안에서 쇼핑몰, 결제앱 등을 포함한 모든 구독 서비스를 동일한 ‘구독’으로 여긴다. 트위터, 메타, 스냅챗 등 소셜미디어도 구독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이 흐름에선 언론사가 가장 먼저 구독 생태계에서 밀려날 확률이 높다. 지금도 다수의 이용자는 페이월이 등장하는 매체들을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국내 언론사들은 더 뒤숭숭하다. 포털 등 뉴스 어그리게이터(aggregator)와 검색엔진을 통한 뉴스 소비가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검색엔진에 ‘언론사 구독’을 입력하면 대부분 네이버 뉴스의 ‘언론사 편집’으로 연결된다. 언론사 편집 서비스는 이용자 선택 측면에선 구독으로 볼 수 있지만 언론사 비즈니스 모델과는 거리가 멀다.
주요 포털의 언론사 브랜드를 앞세운 구독판이 도입된 이후 각 언론사의 트래픽 유입이 증가하면서 뉴스 유료화의 기대감도 높아졌다. 하지만 이용자의 지불의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 "유료 뉴스 이용자는 존재하지만 그 수는 적다"는 현실도 여전하다. 더 나아가 한국에서 유료 구독모델 사례가 등장하더라도 그 결실의 대부분은 해외처럼 대형 언론사가 가져갈 수 있다.
벤치마킹보다 자신의 고유한 접근방식 찾아야
그렇다면 전통 매체는 디지털 생태계에서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 뉴스 유료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해외 주요 언론사의 놀라운 성공 사례는 '그들만의 리그'로 보이는데 우리도 디지털 구독 비즈니스를 마침내 해야 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각각의 성공 사례는 각각의 언론사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즉, 성공 방정식의 함정에 유의해야 한다. 뉴욕타임스가 구독모델을 성공시킨 건 그들만의 전략과 방식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조직문화, 리더십 등 언론사 고유의 자원과 관점에 달려있다. 다시 말해 각 언론사마다 자신의 강점을 살리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당연히 각 언론사별로 독자 파악, 시장 분석이 전제돼야 한다. 로그인, 멤버십 등 이용자 중심 인프라는 기본적으로 공통된 접근이다. 여기에 현재 여건, 보유 기술, 브랜드 영향력 등을 조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한다.
시장은 AI 데이터 확보, 저작권 문제로 과열 조짐
인공지능(AI)의 파고는 언론산업에 하나의 단서를 준다. 현재 진화한 AI 서비스를 창조하려는 IT기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뉴스조직은 콘텐츠 생산 과정의 효율화 측면부터 고객 서비스 접점 개선 등 마케팅 분야까지 활용성을 놓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더 나아가 AI 개발과 서비스 자체가 언론사의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도 있다. AI의 본질이자 핵심인 빅데이터를 활용한 비즈니스에 관한 것이다. AI의 결과물은 데이터의 품질과 양에서 결정된다. 아무리 뛰어난 알고리즘과 막대한 컴퓨팅 파워가 있더라도 수준 높은 데이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지금 오픈AI를 비롯한 스타트업과 테크 플랫폼 사업자도 학습용 데이터 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AI 관심이 커지면서 데이터 확보도 제동이 걸릴 조짐이다. AI 기업으로서는 상당히 치명적일 수 있다. 바로 저작권 침해 논란 때문이다. 유럽연합을 필두로 각국 정부는 AI 및 운영기업이 갖게 될 파급력을 경계하고 나섰다.
IT산업에 관대한 미국 당국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인공지능 모델 자체가 아니라 학습에 활용한 데이터에 대해, 개인정보 등 민감한 데이터 활용으로 인한 권리침해를 중심으로 규제에 착수했다. 이미 이탈리아 정부는 오픈AI를 상대로 데이터 보호법과 관련해 명확한 해결책을 요구했다.
정형화 된 기사, AI 기업과 협력 기반된다
AI 시장에 규제 논의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지만 관련 비즈니스의 미래 가치는 상당하다. 현재 관련 기업들은 법제도를 준수하면서 가능한 방법을 찾는데 골몰하고 있다. 언론산업은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 AI 모델의 학습에 따른 적법하고 정당한 데이터, 이것이 언론사의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도 있어서다. 필요한 데이터를 AI 기업에 공급하는 것이다.
언론사 보유 자산 가운데는 오래도록 쌓인 기사 DB가 있다. 기사는 전세계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사실과 지식을 담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는 챗GPT와 같은 생성모델에 없어선 안될 중요한 부분이다. 오픈AI도 챗GPT 공개를 전후로 학습 데이터 가운데 전 세계 언론사 기사가 포함돼 있음을 밝혔다.
그동안 인공지능 모델들이 활용한 데이터의 출처는 사실 모호한 부분들이 있었다. 콘텐츠를 생산 및 유통하는 기업들이 저작권과 관련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데이터에 대한 규제와 개발 경쟁이 가열되는 지금, 현명하게 접근한다면 충분히 새로운 수익원으로 삼을 수 있다.
언론사가 보유한 기사 데이터는 비교적 정형화 돼 있다. 온라인상에 떠돌아 다니는 다른 텍스트 데이터에 비해 학습 데이터로 전환이 용이하다. 언어의 차이도 하나의 세일즈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각국의 언어는 다르지만 인공지능 서비스는 거의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언어가 다른 데이터는 중복된 내용이라도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한 실험에선 챗GPT가 언어에 따라 동일한 질문에 다른 답변을 내놓는 것이 확인된 바 있다. 언론사 속보와 지속적인 기사 생산도 한 몫을 차지할 수 있다. AI 성능과 별개로 새로운 지식에 대한 답변은 새로운 데이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정보의 핵심 요소인 최신성은 언론사 콘텐츠만한 것이 없다는 의미다.
국내 언론사들도 AI 개발 및 활용 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해 데이터 활용 비즈니스를 포함 기술 접목을 바탕으로 신규 서비스 구성에도 나설 수 있다. 또한 충분한 구독자 풀과 이용자 데이터를 확보할 경우 보유한 데이터와 결합해 새로운 데이터 비즈니스도 그려볼 수 있다. 다만,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경제 기사 접목한 '주식게임' 등 다양한 시도 눈길
언론사가 다루는 전문 분야를 새로운 서비스와 결합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경제 카테고리는 뉴스조직이 힘을 쏟는 콘텐츠 분야다. 경제 뉴스 콘텐츠를 확장해 젊은 독자 유도, 참여 확산, 그리고 수익화를 도모할 수 있다. ‘주식의 게임화(stock gamification, 이하 주식게임)’[1]는 대표적이다.
노르웨이 비즈니스 뉴스 전문 매체 다겐스 네링슬리브(Dagens Næringsliv, DN)는 높은 신뢰도에 반해 부족했던 젊은 독자층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주식게임을 활용했다. 최근 몇 년간 증권거래소에서 투자자의 20% 이상이 처음으로 주식을 구입한 점에 착안해 참여가 쉬운 주식게임을 만들었다. 불과 10주 만에 2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끌어모은 가운데, 절반이 넘는 수가 35세 미만의 젊은 독자였다.
스웨덴의 유력 경제지 Dagens Industri(DI)와 텔레그래프(Telegraph)도 독자 참여와 유입을 위해 주식게임을 활용했다. 성과도 좋았다. 실제로 새로운 스폰서십 체결으로 매출을 끌어올렸다.[2] 또한, 게임 페이지에 전략적인 광고 배치, 금융 서비스 및 포트폴리오 업체 마케팅 유치 등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고려하고 있다.
이처럼 다른 미디어로 확장해 다양한 부가효과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콘텐츠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만큼 이용자 관점에서 참여하고 싶은 콘텐츠의 형태가 무엇이고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할 때 새로운 기회도 만들어진다.
구독 비즈니스도 처음부터 재검토할 수 있어야
새로운 수익 모델 추구는 기존 사업구조를 축소시키라는 뜻은 아니다. 소액결제(micropayment), 독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타겟팅 광고, 뉴스레터 및 팟캐스트로의 콘텐츠 포맷 확장 등 보유한 자원들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기존 디지털 광고도 마찬가지다. 아마존 광고로 예고된 새로운 변화를 능동적으로 끌어안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구독모델도 조금은 관점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구독모델이 무조건 ‘돈을 내는 독자들의 집합’일 필요는 없다. 독자를 유입하고, 관심을 유지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수익원을 만들어 내는 토대로 다뤄야 한다. 또 페이월에도 하드 페이월(hard paywall)부터 데이터월(data wall) 등 접근방식이 다르다. 독자가 구독에 대해 지불하지 않는 모델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무엇이 성공적인 비즈니스이고 큰 수익을 창출할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언론사도 브랜드 경쟁력에 따라 대응 방식도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디지털 전환이 늦은 언론사라고 하더라도 자사의 경쟁 포인트나 차별화를 기초로 다가서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정답이 없다는 건 아직 늦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무얼 가졌는지,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실험해야 한다. 만약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지금까지 걸어온 사례들을 살펴보는 것이 먼저다. 디지털 뉴스 유료화부터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