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 디지털...개발자는 멍든다
개발자 안 뽑고 덜 뽑으면서 '혁신' 운운
AI, 블록체인 등 신기술 적용은 먼 이야기
"기자 아니면 연수 기회, 발언권도 없다"
퍼블리시뉴스와기술연구소(소장 김위근)는 지난해 9월 국내 언론사 IT 인력(개발자)을 대상으로 ‘2022 언론사 IT 종사자 인식 조사‘를 시행했다. IT 인력이 생각하는 언론 산업 현황과 전망, 처우 및 근무 환경, 디지털 전환 등을 주요 항목으로 하는 온라인 설문조사(마켓링크)다.
이번 조사에는 한국언론정보기술협회(이하 협회, 회장 강무성 경향신문 미디어제작국 정보기술팀장) 소속 개발자를 포함 국내 언론사 IT인력 68명이 참여했다. 미디어 전문 비평지 미디어오늘은 16일 설문조사 결과 내용을 인용, 온라인판에 보도했다. 또 한국신문협회 기관지 한국신문협회보(지령 701호)는 2월 1일 관련 내용을 발췌, 머리기사로 게재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하는 '신문과방송'은 설문조사결과 핵심 내용을 다뤘다.
"개발자 존재 자체에 의문 품을 때 있다"
'언론사 IT 종사자 인식 조사'는 국내 언론사 뉴스룸에서 소수이고 잘 드러나지 않는 조직인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그들의 관심과 생각을 들여다보는 데 초점을 뒀다.
그러나 개발자들과 연락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한국언론정보기술협회(회장 강무성 경향신문 디지털제작국 부국장)의 협조가 있었지만 응답 자체를 꺼리는 개발자들을 직접 설득하는 일이 어려웠다.
설문조사에 응한 한 종합일간지 A 개발자는 "디지털 혁신, 전환을 한다고 하는데 개발자는 기자 숫자에 비하면 5%도 되지 않는다"며 "인사(HR) 측면에서 개발자 직군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개발자의 가치에 의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처우·비전 문제로 채용 이후 곧 떠난다
애초에 기술 투자를 않는데 디지털 혁신은 언감생심이라는 불만이 팽배했다. IT 전문 인력 확보에 미온적 환경이다보니 개발자 조직의 활력도도 떨어진다. 국내 언론사의 경우 신입 개발자를 뽑아서 가르치고 적응하는 기간을 갖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채용은 실무에 바로 투입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번 설문조사 응답자도 대부분은 경력 채용자이며 40대 이상의 시니어급이 76.3%였다.
더 큰 문제는 구인난이다. <중앙일보> 모바일서비스본부 한 관계자는 "최근 2년 사이 20여 명의 개발자 채용에 나섰지만 그 절반 정도만 채용할 수 있었다"며 "개발자들이 언론사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채용 이후 금세 이직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 조직 관리가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개발자들은 언론사 근무 경력이 커리어 관리에 썩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IT기업, 스타트업에서 좋은 조건으로 개발자를 싹쓸이 하고 있어 언론사 개발자 품귀 현상은 반복, 심화하는 양상이다. 비교적 디지털 조직의 규모가 큰 편인 <중앙일보>는 기획자 1명당 개발자 3명을 목표(?)로 인력 관리 기준을 잡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이다.
한 종합일간지 디지털 부문 간부는 "개발자들이 들어오더라도 배울 것이 없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커리어 관리가 안 되는 곳이 맞다"고 했다. IT 전문 인력을 육성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한 지역 신문사 개발자 B는 "경영진은 IT 부문에 이슈가 생기면 그냥 외주 용역을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지역 신문사 가운데는 개발자가 아예 없는 곳도 수두룩한 상황이다.
기대하는 역할은 '솔루션 비용 깎는 것'
IT 부문이 소규모이고 중요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설문 응답자들은 개발자를 비롯 디지털 전문 인력이 부족한 것 외에 언론사 내부에 개발자 위상과 한계를 지적했다. 먼저 전통매체에서 IT 부문을 담당하는 총괄 책임자의 직군이 개발자인 경우는 46.2%로 응답자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언론사 IT 총괄 책임자의 직위는 부장급 이하가 전체 응답자의 절반을 넘었다. IT 업무 자체가 부서 이하 단위로 열악한 형편임을 보여준다. 기자직군이 IT 조직을 맡으면 개발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도 제한적일 수 있다. 한 경제지 디지털 조직에서 일하는 10년차 개발자 C는 "기자들이 무슨 의견을 내는지만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디지털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낼 수도 없고 묻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다른 경제지 한 마케팅부서 중간 관리자는 "가령 외부 업체 솔루션 비용이 1억원 짜리면 대충 절반은 깎고 협상하라고 한다"며 "목표와 가치를 실현하는 데 IT를 중요한 지렛대로 삼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사와 인프라 구축을 공동으로 한 IT 전문 기업들도 언론사와 다시는 상대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갑질' 등 불합리한 진행 과정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언론사 IT 종사자의 속앓이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CBS에서 오래도록 IT 업무를 맡았던 정순한 <에너지경제신문> 디지털콘텐츠국장은 "비개발직군이 맡는 게 문제라기보다는 IT 이해도가 부족한 사람이 총괄 책임자가 되는 것이 문제다"며 "앞으로 IT 조직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곳도 10개 내외일 것이다"고 개발자 직군을 존중하지 않는 언론계 풍토를 비판했다. "언론사 경영진의 인식 부족으로 IT 부서를 말단 지원 부서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는 진단도 있었다.
뚜렷한 조직 목표 없으니 단기 '알바' 뛴다
이런 조건에서는 내부 '협업'과 '소통'도 원활하기 어렵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IT 인력이 기자 직군과의 협업이 부정기적이고 간접적이었다. 언론사 IT 종사자가 인식하는 기자들 또는 뉴스룸(편집국, 보도국 등)과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중 ‘정기적이고 공개적인 회의 또는 미팅에서 커뮤니케이션한다’는 8.8%에 불과했다.
언론사 뉴스콘텐츠 생산, 관리 등에서 기자들 또는 뉴스룸과 IT 종사자의 협업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지만 기자와 개발자 간 서로 얼굴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한 종합일간지 디지털 부서에서 일하는 개발자 D는 "출퇴근할 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는 척도 어려울 정도로 교류가 없다. 함께 이야기 나눌 기회도 없으니 남남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IT 종사자의 조직 내 처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다보니 기회만 있으면 소속사를 떠나 이직하려는 IT 종사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 지상파방송사 E 개발자는 "소속이 방송사 자회사다. 방송사 디지털 업무를 한다기보다는 SI업체에서 일한다고 보는 편이 맞다"고 말했다. 이 개발자는 "만나는 사람이 한정적이고 프로젝트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스스로 미래 계획을 세우고 투잡, 쓰리잡을 하는 동료들이 있다"고 전했다.
또 IT 종사자들은 언론사 내에서 재교육 혹은 연수 기회도 전무하고, IT 업무 처리 프로세스나 업무 지시의 명확성이 떨어져 자신 소속사의 근무 환경 전반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A 개발자는 "기자들은 기업, 언론단체 등이 마련하는 해외 연수 지원 기회를 갖지만 개발자는 없다. 이를 기획하거나 제안할 수 있는 책임자도 없다"고 지적했다.
현상유지 외 새로운 시도는 엄두도 못내
전문가 채용, 데이터 분석과 활용, 인프라 구축 등 대부분의 항목에서 자신 소속사의 디지털 투자도 '미흡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D 개발자는 "디지털 분야 투자가 거의 없고 기자들도 네이버에 송고된 자신의 기사에 클릭수나 댓글수에 빠져 있다"며 "개발자들도 새로운 것을 애써 챙기기보다는 자기 일만 하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다"고 털어놨다.
IT 종사자들은 향후 디지털 기술이 언론 산업의 생존과 성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인정했지만, 자신이 하는 직무는 과거에 비해 크게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 인터넷신문에서 유튜브 라이브 방송 등 동영상 서비스 전반의 기술 부문을 주로 담당하는 F는 "처음에는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입사했지만 인력 부족으로 서버, 보안, 데이터 등 모든 것을 맡았다"고 말했다.
직무의 전문화가 어려운 조직 여건은 개발자는 물론 기자도 '슈퍼맨'으로 본다. 중소규모 경제지 IT 종사자 G는 "개발자도 부족하지만 웹 디자이너, 마케터, 데이터 과학자 등 디지털 전문 인력 자체가 부족하다. 그런데 경영진은 일반적으로 IT부 기자 출신에게 그 일을 대타로 맡긴다"며 "이러다보니 일에 진척도 더디고 감정의 골마저 깊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정순한 국장도 "현재 한국 언론사에 IT 조직으로는 도전적인 과제는 제대로 꿈조차 꿀 수 없다. 현상 유지 즉, 유지 보수에 만족하는 정도"라고 진단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IT 종사자들 스스로도 AI, 블록체인 등 신기술에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15년 넘게 언론사 개발자로 일하다 CMS 등 솔루션 비즈니스를 하는 임성묵 코드스 대표는 "괜히 일을 벌였다가 실패하거나 잡음이 생기면 IT 부서에 책임을 전가한다. IT 종사자들이 가장 만만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발자 태도 변화, 디지털 리더십 관건
요즘 한국 언론이 매달리는 디지털 구독모델에 대해서는 대부분 “팔릴 만한 콘텐츠가 부족하다"며 부정적으로 봤다. C 개발자는 "기자들은 자신이 생산하는 콘텐츠에 자부심이 강하지만 현실감은 떨어진다"며 "그동안 제품 고민이 없었는데 뉴스 유료화를 서두른다고 가능한 일인가 싶다"고 꼬집었다.
IT 종사자들이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어렵다. 기자들은 출입처나 학연 등 네트워크에서 교류가 이뤄지고 있으나 개발자들은 소셜미디어 활동조차 조용히 하고 있다. 다른 언론사에서 디지털 및 IT 업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련 정보를 파악할 방법이 딱히 없다.
과거 신문지면 제작 등에 따른 전산 인력을 중심으로 관련 단체가 꾸려지긴 했으나 디지털 생태계 이후 각 언론사에 소속되어 있는 종사자 간 소통은 전무하다. 한국정보언론기술협회 일을 돕는 정순한 국장은 "개발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관심사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IT 종사자들은 활발하게 커뮤니티 활동도 하고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자리를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설문조사 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IT 종사자들은 '내외부 소통과 협력 문화 부재, 자기 개발 기회 부족, 전문 인력 등 디지털 투자 미흡' 등 언론 산업 전반의 혁신 지체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디지털 생태계에 호응하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일궈내려면 기존 낡은 리더십을 창의적인 리더십으로 교체하고 조직 문화, 인력 구성에 전향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개발자 스스로도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향후 언론사 IT 종사자 인식 조사가 이뤄질 때는 비판과 좌절보다는 희망과 기대의 목소리가 수렴되길 기대해 본다.
'2022 IT 종사자 인식 조사'의 주관식 문항에 나온 응답 내용을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다. 극히 소수이기 하지만 일부 언론사는 블록체인 시스템 개발, 메타버스 스튜디오 제작 등 새로운 시도에 나서고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올해 이 결과물들이 공개되면 언론계의 시선이 집중될 것이다.
Q. 최근 1년 사이 소속사에서 IT 인력이 수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 GA4 관련 커스터마이징 개발
- 검색최적화 SEO 지면뷰어
- 블록체인 시스템 개발
- 개인화 서비스 고도화
- 뉴스 환경 변화에 따른 기사 방식의 대응 및 신규 서비스 관련 서비스 론칭 작업
- 지면 취재기자와의 공조
- 플랫폼 간 크로스 개발
- 언론사 포럼 신규 프로토타입 프로젝트
- 메타버스 스튜디오 제작
- 오픈톡을 모티브로 한 단체 커뮤니티
- AI를 이용한 뉴스 콘텐츠 제작
언론사 디지털 전환이 왜 필요한지 묻는 질문에는 매체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필요성을 대표적으로 꼽았다. IT 종사자들은 양질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하는 뉴스 유료화, AI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개인화 서비스에 주목했다. 디지털 투자가 지체될수록 소수의 플랫폼 사업자에 휘둘리는 상황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도 봤다.
Q. 향후 언론사의 디지털 전환이 중요한 이유
- 기존 미디어의 열독률 저하로 인한 수익 감소 타개를 위해서
- 비즈니스 모델 개발과 유료화, 개인화 필요
- AI 기술이 진일보 하고 있으나 내부 검토도 지지부진하여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음
- 각 언론사가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할 경우 네이버 카카오 등 포털 종속에 이어 앞으로도 각종 플랫폼에 얽매여 자생력을 상실할 것이기 때문
- 디지털 오리지널 콘텐츠 생산도 중요하지만 콘텐츠 소비 측면에서 다양하고 쉽게 접속 가능하고 타깃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함
- 주먹구구식 디지털화는 안 되고 획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콘텐츠 라이프 사이클이 15초 정도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콘텐츠 경쟁력만 가지고 언론사 성장을 확약하기는 어렵다.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해 콘텐츠 생산은 물론 비즈니스에 접목해야 한다.
- 언론사 플랫폼에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하면 독자 생존이 어려운 경쟁 환경이다. 낮은 언론 신뢰도를 고려하면 정책 우산만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 다양한 독자 접점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